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,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.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프린세스 로열 빅토리아 (문단 편집) === 말년 === 1888년 [[3월 9일]], 시아버지 [[빌헬름 1세]] 사후 남편 [[프리드리히 3세(독일 제국)|프리드리히 3세]]가 제위에 오르면서 [[황후]]가 되었다. 프리드리히 3세는 즉위 전부터 심각한 [[후두암]]에 걸려 있어서, 빅토리아 황후가 남편 대신 온갖 정무를 처리했다. 그런데 [[프리드리히 3세(독일 제국)|프리드리히 3세]]의 후두암 치료를 둘러싸고 [[영국]]과 [[독일]] 의료진들 간에 분쟁이 일어났다. 영국인 의사 멕켄지 박사가 "후두암이 아니다"고 진단을 내리는 바람에[* 병리학의 아버지라는 [[루돌프 피르호]]의 조직검사에 근거하기는 했다.], 프리드리히 3세는 치료 시점을 놓쳐 제대로 된 수술을 받지 못하고 즉위 3개월 만에 사망했다. 이 때문에 1888년은 '[[세 황제의 해]](Dreikaiserjahr)'로 불리게 된다. 프리드리히 3세의 오진과 사망 또한 빅토리아의 평판을 더더욱 깎아내리는 데 일조했고 아들 [[빌헬름 2세]]는 이 일로 인해 두고두고 어머니를 원망했다. >'''"영국 의사가 내 아버지를 죽였고 영국 의사가 내 팔을 불구로 만들었다. 이는 내 어머니의 잘못이다."''' >---- >'''[[빌헬름 2세]]''' || {{{#!wiki style="margin: -6px -10px" [[파일:336916-1351854992.jpg|width=100%]]}}} || || 말년의 빅토리아 황태후 || 장남 [[빌헬름 2세]]의 즉위하면서 황태후가 되었으며, 2년뒤 시어머니 아우구스타 태황태후가 사망하면서 황실에서 가장 큰 어른이 되었다. 정치성향이 정반대인 빌헬름 2세가 황제가 된 이후 정치적인 목소리를 내지 않고 조용히 지내다가 [[유방암]]에 걸려 [[1901년]] [[8월 5일]][* 어머니 [[빅토리아 여왕]]이 세상을 떠나고 약 7개월 뒤였다.] 60세를 일기로 사망했다. 독일 황후임에도 불구하고 [[영국인]]이라는 자부심이 강해서, [[유언]]으로 자신의 관을 [[유니언 잭]]으로 감싸서 매장해 달라고 했다. 개인적으로는 매우 똑똑한 인물이었고 자유주의에 대한 신념도 강했지만 어머니로서는 결국 0점짜리 어머니였고 한평생 아들과 적대관계가 되고 말았다.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-BY-NC-SA 2.0 KR으로 배포하고,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.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.캡챠저장미리보기